역사적 부당 행위는 우리에게 있어 특히나 민감한 문제다. 이는 노골적으로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우리 대한민국의 민족적 마찰과 관련이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많은 정치적 분쟁을 발생시키고 있고, 최근에는 이것이 엄청난 경제적 마찰로까지 이어지면서 그 파급력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일본은 계속해서 사죄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제 남은 위안부 할머님은 스무 명 남짓이다.
이러한 역사적 부당 행위의 사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논리는, 앞선 세대의 잘못을 후대의 사람들이 사죄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한 가지는 엄연한 사실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일본 땅 위에 두 발 딛고 살아있는 인간 중 위안부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범 범죄자들이 다 죽었으니 아무도 사과할 필요가 없는가? 왜 이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이는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관한 논의와 닿는 접점이 존재한다.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거는 현재 대학 지원자들이 과거의 잘못(노예제와 같은)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 노예제로 인한 보상의 책임을 현재 세대의 백인에게 전가해, 현재 세대의 흑인을 현재 세대의 백인보다 우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위안부 문제로 돌아오면, 금전적 배상 차원에서의 그 민감성 역시 지적된다. 돈은 과거가 아닌 현재 세대 시민들의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반발감이 거셀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지금 다루는 차원의 문제는 민족과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진 것들이다. 특정 구성원이 벌인 미시적 사건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경계 내에서 자행된 일에 관한 것이다. 미국 전반에서 노예제가 시행될 때, 노예들을 부린 사람들은 미국 전역에 걸친 미국의 시민들이었고,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문제는 일본이라는 경계 내의 ‘민족적 차원’에서 자행된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의 인식을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의 사고에 있어,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은 세대를 초월한다. 우리가 윤봉길과 안중근을 기리고 그들을 떠올릴 때 가지는 숭고한 의식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아니, 더 나아가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행동’을 따질 필요가 없다면 이순신이 영웅이었든, 역모를 꾀했든 우리가 알 게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가지는 민족적 정체성에 그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는 반도 위에서 태어나 우리와 피를 공유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와의 공통적인 정체성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의지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세대 대부분의 일본인은 잘못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와 피를 함께한 이 땅 위 우리의 선조들, 그리고 그들에게 참담한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피가 저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 역시도 과거의 선조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 자명하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보라.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분노가 발생하는 것이며, 이로부터 책임을 꾸준히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배상하라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는 이러한 주장을 했다. 우리는 내 가족과 내 민족, 내 나라의 과거로부터 빚과 의무도 물려받지만 동시에 유산과 기대 역시 계승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적 관점’은 오늘날 전적으로 자신의 과거 선조가 벌인 행위를 자신의 자아와 유리화시켜서 간주하는 자유주의적 시각에 큰 물음표를 던진다. 또한, 이는 막연히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사죄의 인과관계에 ‘도덕’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합리적으로 근거화한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사과해야 할 이유는, 논리적으로도 매우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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