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 무뢰한의 결말, 몇몇 장면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감상하신 뒤 돌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뢰한. 나름의 굉장히 독특한 향기를 지닌 영화다. 노래가 기깔나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조영욱이다. 조영욱의 음악은 영화를 그 자체로 생동하게 만든다. 쓸쓸하지만 화려한 밤거리와 어울리는 그런 느낌들.. 더불어 전도연의 연기는 어마어마하다. 캐릭터 자체가 워낙 극적이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인물상을 잘 살리기만 해도 박수 받겠지만, 전도연은 그러한 캐릭터를 자신의 '일상성' 안으로 흡수시켜 버린다. 무시무시하다. 전도연의 화류계 연기는 영화 <카운트다운>, <무뢰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으로 계보가 이어지는데 따로 리뷰하도록 하겠다. 줄거리에 따른 장면들이 의미하는 바를 각각 해석하면서 리뷰하겠다.
영화 <무뢰한>은 개인이 사수하고자 하는 경계와 구분에 관한 영화다.
Q. 재곤은 왜 오줌 냄새를 맡았는가?
자세한 줄거리는 차치하고, 이번 글은 재곤(김남길)과 혜경(전도연)의 '경계와 구분'에 관한 해석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곤의 오줌 씬을 통해서 귀결된다.
작중 초반, 재곤은 깡패들과 선을 확실히 그으려는 일련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상무를 식당에서 조우하는 대신, 외진 곳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경찰직에서 불의의 사건으로 옷을 벗은 선배를 만나는 정재곤. "검거 중 다리에 총알 한 방 쏜다고 무슨 일이 발생하지는 않아." 라고 말하며 웃어 보인다. 뇌물을 받으라고 종용하는 선배. 그가 경찰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묻자, 재곤이 답한다.
"형사가 일을 하다가 범죄자와 구분할 수 없게 되면, 그걸로 형사는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의 말을 마지못해 듣지만, 곧장 차에서 뇌물을 받을 생각이 없음을 밝히는 재곤. 끊임없이 범죄자와의 "경계"를 사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곤은 그 경계를 완벽히 사수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준길(박성웅 배우)을 검거하기 위해, 김혜경(전도연 배우)에게 접근하는 시점부터 재곤은 '이영준'이라는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재곤은 혜경과 사랑, 혹은 사랑에 비슷한 것에 빠지게 되고 이미 그 경계는 허물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란 예언은 영화 곳곳에서 제시된다.
"예리하시네." 이미 혜경은 이영준이 모든 것을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첫 만남에 간파한다. 그리고 영준은 더 이상 거짓말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혜경에게 이것을 순순히 인정해버린다. 이미 정재곤은 혜경에게 정재곤의 존재를 인정한 셈이다. 애초에 이영준과 정재곤의 경계는 희미하다.
돼지발정제를 바르려는 문기범(곽도원 역) 형사. 재곤이 과거에 검거를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따라하는 이것은 곧 재곤의 과거로 투영되고, 이를 저지하는 재곤의 모습은 곧 자기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김혜경을 경찰서로 데려온 직후의 장면을 유심히 보면, 혜경이 특수 유리를 통해 유심히 자신 쪽을 바라보자, 재곤이 당황한 듯 유리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내 픽 웃어버리는 재곤. 형사 생활을 오래 한 재곤이 특수 유리를 통해서 이쪽(정재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는 곧 혜경이 자신의 경계 즉, 이영준을 넘어서 정재곤을 바라보고 있음에 대한 의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혜경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준길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피어난 순간, 그리고 그렇다고 스스로 믿어야만 하는 혜경. 혜경과 재곤은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을 속이고 그 경계를 사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혜경에게 "같이 살면 안 될까?"라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는 재곤. 해당 장면에 대한 해석은 각자에게 맡기겠지만 너무도 그 의미는 자명하다.
(정말 전도연의 어마어마한 연기력..) 혜경이 원했던 것은, 그저 평화롭게 잡채를 해먹으며 함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혜경은 그것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준길이란 인물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러나 재곤은 혜경의 그 믿음의 경계를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나랑 같이 살고 싶다고 한 거 거짓말이었죠?" = '나는 준길을 사랑해야 하니까, 거짓말이라고 해. 내 경계를 허물지 말아 줘' 하지만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는 재곤. 진짜 같다며 말을 흐리는 혜경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기어이 재곤은 혜경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재곤은 "다리에 한 방"이 아닌, 심장에 쏴 준길을 즉사시켜버린다. 그리고 혜경을 취조하는 재곤. 정재곤과 이영준의 구분은 허물어진다. 단지 혜경에게 아직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 뿐. 그는 혜경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넘어서 인생을 완전히 흩뜨려버린다.
나는 사랑을 했다며 울부짓는 범죄자. 누군가에겐 사랑이라고 감히 불려지지만, 실제로는 범죄와 파괴일 뿐이다. 해당 장면에서 이미 형사들이 피해입은(성범죄, 폭행으로 보이는) 여성의 이름을 알고 또 찾고 있다는 것은, 해당 범죄가 단순한 성범죄가 아님을 의미한다.
해당 장면에서 여성의 팔에 나 있는 마약자국은 재곤에게 혜경을 반추하게끔 하는 극 중 장치. 정말 과도한 해석이지만, 여성의 이빨들이 뽑힌 극적인 시퀀스는 재곤으로 하여금 자신이 혜경에게 줬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녀를 다시 찾아야 할 감정적 명분이랄까.
김혜경을 찾으러 민영기(김민재 배우)를 찾으러 온 재곤. 해당 장면에서 민영기는 말한다. 왜 그러는 거야?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러나 재곤은 기어이 혜경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결국 혜경의 삶은 마약쟁이의 수발을 드는 나락이었다. 마약. 재곤이 아니더라도 물론 혜경의 결말은 비슷했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준길이라는 허상의 풍선을 재곤이 갈갈이 찢어발겼다는 것이겠지만.
재곤은 이미 민영기로부터 정보를 입수해, 혜경이 마약사범의 수발을 들고 있는 것을 안다. 마약범의 검거를 앞둔 재곤은 왜 오줌 냄새를 맡는가.
"형사가 일을 하다가 범죄자와 구분할 수 없게 되면, 그걸로 형사는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곤은 그 구분이 허물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영준을 연기하면서. 혜경과 사랑, 혹은 사랑과 비슷한 것에 빠지면서, 준길에게 총을 쏘면서, 많은 것들이 희미해지고 전복되었다. 재곤은 자신의 소변 냄새에서, 자신이 지금 검거하려는 범죄자와 같은 냄새가 나진 않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혜경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 정재곤을 밝히는 재곤. 그리곤 변명하듯이 말한다. "난 형사고, 넌 범죄자의 애인이야. 난 널 배신한 게 아니야." 재곤은 그 경계를 끝까지 사수하려 발악한다.
혜경에게 칼에 맞고는 경찰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하는 재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말없이 사라진다. 혜경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흐느껴 운다. 재곤은 그렇게 혜경의 인생을 두 번 망가뜨린 것이다.
그렇게 재곤은 자신이 그토록 집착했던 경계와 구분이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음을 깨닫는다. 형사 정재곤. 그렇다면 그것의 "대척점"인 무뢰한은 누구인가? 영화의 결말은 꽤나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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