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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가까이 또 친숙하게 존재하고 있을까. 흔히들 사우나에 때를 밀러간다고 한다. 목욕이라는 것은 그만큼 일상적인 일이고,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문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우나는 우리말도, 영어도, 일본어도 아니다. 핀란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마저도 정확하진 않다) 더군다나 우리의 목욕문화는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이 자명한데도, 때를 미는 행위라던지 목욕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우리와 일본이 크게 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목욕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써, 서로 섞이고 또 섞이고 있는 혼종의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신윤복의  < 단오풍정 >, 국보 135호

 불교가 융성했던 시대에서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로 변화하며 조선시대의 목욕문화는 퇴색되었다. 유교문화 하의 양반들이 신체노출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한 번쯤은 봤을법한 신윤복의 <단오풍정>에서는 과거 선조들의 희화와 관음의 장으로써 작동하는 목욕을 엿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종교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목욕이 작동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고 닦는 행위가 아닌, 땅 위의 숱한 역사와 의식의 축적으로서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 STUDIO GHIBLI INC.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센과 치히로>에 나타나듯이 목욕을 유희의 장이 아닌 신과 정령들이 찾아드는 영적인 장으로 그리고 있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사뭇 우리와 다르다. 과거 불교가 일본에서 융성함에 따라 물을 끓여 목욕하는 문화가 성행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센토라는 사원 내의 목욕탕이 대중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처럼 일본에서의 목욕은 종교적인 배경과 그 궤를 함께 시작한 것이다. 대중적인 민담이었던 교묘황호의 목욕보시 이야기가 오물신을 씻겨주는 센의 모습으로써 차용되었듯이, 일본인들에게는 가장 신화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곳이 바로 목욕하는 곳, 온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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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마법들, 날아다니는 용과 알 수 없는 판타지 속에서 주인공 치히로는 또 다른 일상을 센으로써 보낸다. 치히로가 센이 되었다는 것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엄청난 성장과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보다는, 단순히 바깥세상에서 새로운 공간인 목욕탕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써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영화가 아님은 일본인들에게 있어, 온천의 일상성과 다가오는 의미로써 증명되는 것이다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와, 행위자들의 속성을 넘어서서 누군가가 거하기 좋은, 하나의 테마로써 목욕은 일본인들에게 그려진다.

 

 신화적인 모습으로써 그려졌던 목욕<테르마이 로마이>에서는 보다 우스꽝스럽지만 일상적으로 그려진다. 로마의 목욕문화의 원천이 사실은 일본의 목욕탕으로 타임슬립한 로마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코믹하고도 대담한 설정으로써 일본인들의 일본 목욕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수 있다. 영화는 시종 일본의 목욕문화에 감탄하는 로마인을 희화적으로 표현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의 목욕문화 그대로의 풍경을 세세히 보여주고 있다. 대형 온천탕뿐만이 아닌, 각질제거기와 탕 내의 음료까지. 미시적인 요소들 하나하나를 조명함으로써, 목욕문화라는 것이 단순히 목욕그 자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요소의 총체적 집합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온돌 등의 요소는 목욕이라는 문화가 얼마나 많은 교류와 혼종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되어 왔는지 가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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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형적으로 발달한 대형온천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문화가 되고 중심으로 수많은 문화들이 집결하는 하나의 이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엄청난 수의 직원들과 함께 펼쳐지는 향연의 모습은 에도시대부터 위락시설로써 작동해온 욕탕의 이미지이자, 곧 현재 일본인들이 그리는 온천장의 문화다. 더불어 이러한 모습을 과거 일본의 거품경제와 연결지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던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씻김굿이라 볼 여지도 있다. 고급 외제차를 탄 치히로의 가족들이 행방불명을 거쳐 다시 바깥세상으로 돌아갔듯이 말이다

 

필자가 직접 홋카이도 눈축제 당시 찍은 온천의 풍경

 작년 겨울에 홋카이도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홋' 카이도다. '훗' 카이도가 아니다) 나는 일본의 온천문화가 참 마음에 든다. 뭐랄까,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것들을 오롯이 보존함으로써 획득되는 특유의 분위기. 욕실의 얼굴부분에만 김이 서리지 않게 코팅을 해둔 거울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당분간 일본을 갈 일은 없겠지만, 그들이 참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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