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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입니다. 이하 글은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결말과 중요 부분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포함합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감상하신 뒤 돌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철수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결말과, 교통사고 , 그리고 몇몇 의문이 드는 지점과 장면에 대한 제 해석과 생각에 관해 작성했습니다. 

 아울러 영화 복기 카테고리에 세 편에 걸쳐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상세한 줄거리를 써놓았습니다. 거의 10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프랑스 영화처럼 강렬한 주제에 대해서 건조하게 그리는 화풍을 선호하시는 분들은 보시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읽는 걸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작성했습니다.

 

 

(스포)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상세 줄거리 및 결말 (1)

[김철수입니다. 이하 글은 영화에 대한 감상/리뷰 외의, 영화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매우 상세한 묘사가 주를 이룹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감상하신 뒤 돌아와주시면 감사

gong-il-gun.tistory.com

 

 

1. 결말에 대하여

 결말 부분이 다소 충격적입니다.  이는 감독이 인간 내면의 부조리함과 관성을 처절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결론 지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다니엘은 동생을 죽였듯, 형인 Bonus 역시 죽인 것이죠. 보너스가 정신을 완전히 잃었는데도 다니엘은 폭주하듯 그의 머리를 계속해서 내려칩니다. 작중에서 이미 다니엘은 머리로 누군가의 머리를 들이박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실제로 보너스가 목숨을 잃었는지 잃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니엘은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대하는 그런 신부가 아니었고, 스스로 변화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영화 중간중간 마을사람들이 자신의 강론에 감동받은 것을 보고 역으로 다니엘이 스스로 감동받는 장면들이 있었는데요, 그러나 결국 다니엘은 여전히 자신의 폭력성을 소유하고 또 발현시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만약 한국 영화였다면, 보너스에게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주고 죽음으로써 사죄하는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찌되었든 다니엘의 가짜 신부대행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 대표되는 리디아는 과부 Ms. Ewa를 성당 안으로 다시 들입니다. 다니엘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갈등이 봉합된 것은 결말에 노골적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영속적이지 않을지라도. 

 엘리자는 변화를 꾀하기 위해 마을 바깥으로 떠납니다. "바람이 이끄는대로" 떠나는 것일까요.

 

2. 엘리자는 다니엘이 신부가 아니란 것을 알았는가.

 저는 어렴풋이 눈치를 챘다고 생각합니다. 둘 간의 관계를 돈독히 쌓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가지 징후가 보입니다. 다니엘이 자신이 계속 신부였을 거 같냐고 묻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결정적으로 엘리자가 다니엘에게 입을 먼저 맞추고 관계를 가지는 시점 직전에는, 최소한 엘리자는 다니엘이 신부가 아닐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관계 후에는 더욱 그랬겠죠.

 또한 이 지점은 계속해서 영화가 투영해서 관객들에게 제시해 줍니다. 다니엘과 엘리자, 그리고 그의 무리들은 어딘가 닮아있고 그 미묘한 지점을 서로가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포인트들을 느낀 엘리자는 다니엘을 자신과 어딘가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래서인지 줄곧 신부가 아닌 인간 다니엘을 대하듯이 편하게 대하죠. 폐선에서 술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신부와 불량아들. 그리고 그런 신부를 먼저 초대한 엘리자.

 결정적으로 다니엘이 신분증을 경찰에게 제시해야 하는 장면에서, 본인이 이것을 무마해주는 장면은 모두에게 해석의 여지를 줍니다. 

 토마스 신부에게 엘리자가 그가 다시 돌아올것이냐 묻는 장면은, 엘리자가 그가 정말 신부였기를 바라는 장면임과 동시에 그가 신부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토마스 신부가 모든 교구에는 어차피 신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픽 웃어버리는 엘리자. 이것 역시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그녀에게 다니엘이 특별한 존재임을 짐작케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 의지하기 위해 신부님을 찾습니다. 그런 의지가 가능하다면 그 존재가 꼭 신부여야 할까 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3. 교통사고는 누구의 잘못인가

 이 부분은 답이 나와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중반부 엘리자가 보여준 동영상을 보면, 여섯 명의 운전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술과 마약에 취해있는 그들의 모습을 본 관객들은 당연히 그들이 가해자였으며, 반대편 운전자가 억울한 피해자였다고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나 실제로는 과부가 고백했듯이, 반대편 운전자 역시도 자살을 해버릴거라고 부인에게 말한 뒤 운전대를 붙잡고 사라진 상황이었습니다. 둘 중 누가 실수든 고의든 중앙선을 넘었는지 영화에서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양 쪽 모두 이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었던 것만이 사실입니다.

 

4. 엘리자는 왜 어머니 앞에서 자신이 알고있는 여섯의 "상태"를 모른 척 했는가

 이 부분 역시 답을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들 마을 안에서의 각자의 상황이 있었던 것이죠. 가짜 신부대행을 하는 다니엘은 완벽한 외지인입니다. 그는 가짜 신부복을 옷에 걸친채 정의감과 같은 것에 기대어 운전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하죠. 영화 속 신부복은 그러한 상징물로 보는 것이 맞는듯 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곳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엘리자는 다니엘이라는 외지에서 온 신부, 혹은 신부인척 하는 젊은 남자에게 "정말로 사실이 어땠는지"(물론, 이 사실도 하나의 의견이죠)를 보여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억울한 것은 운전자일 수 있다라는 스탠스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에게까지도 말이죠.

 그러나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 완전히 마을사람들의 반대편에 선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던 것이겠지요.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습니다. 과부 역시 처음에 자신을 찾아온 신부에게 실제로 그 교통사고가 있던 날 자신과 남편의 격렬한 다툼이 있었음을 말하지 못합니다. 오랜 기간 받아온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 때문이었을까요. 그녀 역시 이 사고에 있어서 100% 억울하고, 또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던 겁니다. 

 어쩌면 이 같은 사실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엘리자는 마을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 다니엘의 과거

 핀체르와 다니엘의 고해성사 장면을 통해서 관객들은 다니엘의 과거를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도둑질도 많이 하는 나쁜 아이였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한 놈을 때렸는데 그가 병원에서 떨어져서 죽어버렸다. 계획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버렸다. 나는 소년원에 수감되었고, 그곳의 신부를 구워삶아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죽인 남자의 형이 소년원에 들어오는 바람에 가석방을 구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마을 목공소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는데...” 

 그러나 이는 핀체르가 듣고 말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 역시도 처음부터 다니엘의 거짓말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실제로는 실수나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의도를 가지고 그(보너스의 동생)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것이죠. 다니엘은 처음부터 살인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악인이었고 계속해서 그래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신을 한 신부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벽한 정보를 관객들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에게 너 같은 종자는 어디서든 느낄 수 있다 라며 쏘아 붙이던 형사의 작중 초반의 모습. 서늘합니다.

 제가 정말로 영화를 통해서 확신하게 된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다니엘은 가짜 신부 대행을 통해서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언제든 사람을 자의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둘째, 마을 사람들은 다니엘을 통해서 어느정도는 진실로 감동받고 위안 받았다. 다니엘로 인해서 교통사고로 인한 마을의 아픔이 중화되었다. 이 부분은 마지막 과부가 성당으로 들어오는 장면과, 유가족 중 한 명이 운전자의 장례행렬에 함께 하는 것으로 매우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진짜 토마스 신부가 엘리자의 말을 듣고 짓는 표정은 바로 우리 관객들의 표정이 아닐까 합니다.

 

[총평]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많은 분들은 결말의 충격과 함께 다니엘에 초점을 맞추어 보시던데,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을 사람들의 변화에 더 무게를 두어 볼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다니엘이지만 말이죠. 핀체르가 말하듯, 계속해서 수감되어 자식에게 널빤지를 생일선물로 주는 뻔한 인생을 다니엘은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앞으로의 생활은 달라질 게 없을 겁니다. 아니, 더 심해질 겁니다. 가짜 신부대행이라는 엄청난 해프닝을 겪었는데도 말이죠. 어쩌면 성당에서 자신의 문신을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떠난 것은 이러한 주제를 나타내는 건지도 모릅니다.

 "나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사람이다."

 마치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느낀 구원은 해골물이었습니다라고 밝히듯 말이죠. 리디아의 반응에서 보이듯 마을 모두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영화의 결말이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엘리자의 떠남, 그리고 리디아와 과부의 화해에 보다 영화의 방점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변해야 하는 사람은, 편견 속 문신을 한 신부가 아니라 바로 마을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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